정의
조선 중기에, 예조좌랑, 해운판관, 부안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11년 정언에 이어 부수찬이 되었으나 파면되고, 이듬해 다시 정언(正言)을 거쳐 수찬(修撰)·지평(持平)·교리(校理)를 역임하였다. 1613년(광해군 5) 문학을 거쳐 교리로 있을 때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무고를 입고 고성(固城)으로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인하여 다시 교리에 임명되었다.
시무십이조(時務十二條) 및 안변십책(安邊十策) 등을 건의하였으며, 응교(應敎)·사인(舍人)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성묘하러 고향에 갔다가 피난한 왕의 행재소로 가던 중 부여에서 병으로 죽었다. 고성의 유촌서원(柳村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휴옹집(休翁集)』·『해동악부(海東樂府)』 등이 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택당집(澤堂集)』
- 『휴옹집(休翁集)』
- 『백헌집(白軒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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