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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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예조좌랑, 해운판관, 부안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덕현(德顯)
  • 휴옹(休翁)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송(靑松)
  • 사망 연도1624년(인조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조좌랑|해운판관|부안현감
  • 출생 연도1577년(선조 1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장희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예조좌랑, 해운판관, 부안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덕현(德顯), 호는 휴옹(休翁).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의 현손이며, 영돈녕부사 심강(沈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심의겸(沈義謙)이다. 아버지는 현감 심엄(沈俺)이며, 백부(伯父) 심인겸(沈仁謙)에게 입적되었다. 어머니는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1년(선조 3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이어 예문관검열을 거쳐 대교(待敎)에 승진하였고, 설서(設書)로 옮겨 무설(巫說)을 믿는 세자 광해군을 간하다가 미움을 받아 사직하고 강화도로 물러났다. 1604년 전적·감찰을 거쳐 예조좌랑으로 지제교를 겸하고, 해운판관(海運判官)·부안현감 등을 지냈다.

1611년 정언에 이어 부수찬이 되었으나 파면되고, 이듬해 다시 정언(正言)을 거쳐 수찬(修撰)·지평(持平)·교리(校理)를 역임하였다. 1613년(광해군 5) 문학을 거쳐 교리로 있을 때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무고를 입고 고성(固城)으로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인하여 다시 교리에 임명되었다.

시무십이조(時務十二條) 및 안변십책(安邊十策) 등을 건의하였으며, 응교(應敎)·사인(舍人)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성묘하러 고향에 갔다가 피난한 왕의 행재소로 가던 중 부여에서 병으로 죽었다. 고성의 유촌서원(柳村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휴옹집(休翁集)』·『해동악부(海東樂府)』 등이 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택당집(澤堂集)』

  • - 『휴옹집(休翁集)』

  • - 『백헌집(白軒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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