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방록 ()

삼방록
삼방록
고전산문
문헌
「왕경룡전」 · 「유영전」 · 「상사동기」 등 삼방록에 「요로원기(要路院記)」를 덧붙인 한문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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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왕경룡전」 · 「유영전」 · 「상사동기」 등 삼방록에 「요로원기(要路院記)」를 덧붙인 한문 소설집.
개설

겉표지 제목은 ‘三芳要路記(삼방요로기)’로, 안 제목이 ‘삼방록’이다. 『삼방록』은 「왕경룡전(王慶龍傳: 일명 玉檀傳)」·「유영전(柳泳傳: 일명 雲英傳)」·「상사동기( 相思洞記: 일명 英英傳)」 등 여인의 순정을 주제로 한 세 소설을 묶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요로원기(要路院記)」를 덧붙였으므로 ‘삼방요로기’라고도 한 것이다.

편찬/발간 경위

「왕경룡전」(옥단전)은 인조반정 이후 서인정권의 중신이었던 김집(金集)의 수택본 한문소설집에도 수록되어 있었다. 또, 이본으로 김동욱(金東旭) 소장본이 있는데, 김동욱본에서는 여주인공 옥단이 아직 살아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소설은 명나라 가정(嘉靖)말에서 만력(萬曆) 때까지를 무대로 하였으므로, 김동욱본의 필사시기는 광해군·인조연간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소설의 성립시기도 그때까지 올려 잡을 수 있다. 이는 인조 때 김집이 이 소설을 보았다는 사실과도 부합된다. 그런데 이 『삼방록』에 수록된 「왕경룡전」에서는 옥단이 아직 살아 있다고 한 부분이 빠져 있으므로, 훨씬 후대에 필사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더구나, 함께 수록된 「요로원기」가 빨라야 1708년(숙종 34)에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 『삼방록』의 필사시기는 그 이후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서지적 사항

78장. 필사본. 원본은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삼방록』에 수록된 「왕경룡전」은 김동욱본보다도 4언 1구 중심의 문체로 더욱 정제되어 있다. 그러나 김동욱본은 삽입한 시가 빠져 있고, 삼방록본과 오자(誤字)와 탈자(脫字) 부분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삼방록본의 직접 선행본은 아니다. 「왕경룡전」은 이후 1917년 11월 5일 신구서림(新舊書林)에서 「쳥누지렬녀(靑樓之烈女)」로 국문 번역하여서 발행하기도 하였다.

「유영전」(운영전)의 이본으로는 국립중앙도서관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본·이시시로본(石城衛中謄書本)·이마니시본(今西龍文庫本) 등이 있다. 국문본으로 장서각본(표제명 金華寺記, 附 雲英傳)·이재수본(李在秀本)·김기동본(金起東本)이 있다. 신활자본으로 영창서관 발행 「연정 운영전(演訂雲英傳)」이 있다.

또한, 「상사동기」(영영전)의 이본(異本)으로는 일사문고본(一蓑文庫本)이 있으며, 「요로원기」의 이본으로는 이원명(李源命)의 『동야휘집(東野彙輯)』에 실린 「요로원이객문답 (要路院二客問答)」, 이양오(李養吾)의 『파수록( 罷睡錄)』에 실린 「요로원기」, 국립중앙도서관본(부분), 이마니시본(天理大學 今西春秋文庫本)이 있고, 국문본으로 가람문고본이 있다.

내용

이 소설은 당나라의 백행간(白行簡)의 「이와전(李娃傳)」에서 파생된 백화소설(擬話本小說)로서 명나라의 풍몽룡(馮夢龍)의 『경세통언(警世通言)』에 실린 「옥당춘낙난봉부(玉堂春落難逢夫)」와 내용이 같다. 특히, 왕경룡·옥단·조아무개는 「옥당춘낙난봉부」의 왕경륭(王景隆)·옥당춘·심홍(沈洪)에 해당한다. 또, 「왕경룡전」은 주인공 왕경룡을 정유재란 때 조선에 감군(監軍)으로 왔던 왕사기(王士琦)에 연결시키려는 뜻이다. 곧, 「왕경룡전」은 「옥당춘낙난봉부」의 번안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유영전」(운영전)은 안평대군(安平大君)의 궁녀인 운영과 김진사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한문소설이다. 이 소설은 두 혼령이 수성궁(壽聖宮) 폐허에서 유영이라는 선비에게 비련의 전말(顚末)을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였다.

「상사동기」(영영전)는 성종의 다섯째 아들 회산군(檜山君)의 궁녀인 영영과 성균관 진사인 주인공의 사랑을 다룬 한문소설이다. 「운영전」과는 소재가 같으나, 행복한 결말을 맺는 점이 다르다. 신소설 작가인 이해조(李海朝)는 이 소설의 사건 설정을 빌려 한문소설 「잠상태(岑上笞)」를 지어 1906년 11월부터 1907년 4월까지 『소년한반도(少年韓半島)』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요로원기」는 박두세(朴斗世)가 1708년 요로원(충청남도 아산군 음봉면 신정리에 있던 객사)에서 하룻밤 지낸 이야기를 적은 기행문으로 알려져 있다. 낙방 거자(擧子)인 주인공과 서울 양반 사이에 주고받은 육담풍월(肉談風月)이 흥미로우며, 서울의 벌열이 권력을 독점하여 빚어지는 세태를 풍자한 것도 주목을 끈다.

참고문헌

「조선후기소설고증 1」(심경호, 『한국학보』 56, 일지사, 1989)
「최문헌전에 대하여」(정병욱, 『한국고전의 재인식』, 홍성사, 1979)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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