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본. 이본으로 「왕어사경룡전(王御史慶龍傳)」·「청류지열녀(靑樓之烈女)」 등이 있다. 중국을 배경으로 하여 기생과의 애정관계를 다룬 작품이다. 작품의 시대배경이 명(明)나라 가정연간(嘉靖年間)으로 되어 있고, 중국 소설과의 연관성으로 보아 임진왜란 직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왕각로(王閣老)는 낙향하면서 거상(巨商)에게 빌려준 은자(銀子)를 받아오라며 아들 경룡(慶龍)을 남겨 두고 떠난다. 경룡은 돈을 받아 내려오다가 서주(徐州)에 들린다. 그곳에서 주모의 소개로 기생 옥단(玉檀)을 사귀게 되면서 수만금을 탕진한다.
옥단이 돈이 떨어진 경룡을 쫓아내라는 기모(妓母)의 말을 듣지 않자, 기모는 집을 옮겨 경룡으로 하여금 길을 잃고 방황하게 한다.
쫓겨난 경룡은 기모가 시킨 도적들에게 맞아 기절하였다가 마을 노인에게 구출되고, 그 길로 양주(楊州)지방 광대의 무리에 예속된다.
우연히 전날 옥단을 소개하였던 주모를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니, 주모는 경룡의 편지를 옥단에게 전해 주기로 한다. 편지를 받은 옥단은 기뼈하며 경룡을 만난 다음, 황금을 주면서 새 옷을 사 입고 다시 집으로 찾아오라고 일러준다.
경룡은 옥단의 말대로 비단옷을 사서 입고 빈 상자를 재물로 가장하여 그 집을 찾아간다. 전날의 기모는 다시 반기며 이전의 잘못을 사과하면서 극진히 접대한다. 이날밤 옥단과 경룡은 기생집의 보화를 훔쳐 집을 나오고, 이튿날 관가에 기모를 고발하게 된다.
마침, 기모에게 돈을 주고 옥단을 첩으로 삼으려던 조모(趙某)는 화가 나서 옥단을 자기집으로 납치해간다. 그러나 조모의 처가 옥단을 시기하여 남편과 옥단을 독살하려고 밥에 독약을 넣었는데, 남편만 그 밥을 먹고 죽는다. 관가에서는 남편을 죽인 죄로 본처와 옥단을 함께 옥에 가두게 된다.
한편, 경룡은 옥단을 잃은 뒤 그 길로 본가에 돌아가 부친으로부터 엄한 훈계를 받은 다음, 학업에 열중한 결과 장원급제를 하고 암행어사를 제수받는다. 옥단의 연락을 받은 경룡은 곧 암행어사로 출두하여 옥단을 구하고, 이들은 행복을 누린다.
「왕경롱전」은 중국 당대(唐代)의 애정소설 「이와전(李娃傳)」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부잣집 아들이 기녀에게 빠져서 가지고 있던 재물을 모두 탕진하여 냉대를 받아 쫓겨난 뒤, 다시 그 기녀를 만나 도움을 받게 된다는 기본구성이 일치한다.
그러나 「이와전」에서 기녀는 전날의 박대를 뉘우치고 걸인이 된 그를, 학업을 닦게 도와 장원급제하게 한다. 그러나 출세를 하게 한 다음 떠나버린다. 그의 부친이 이를 가상히 여겨 그 기녀를 찾아 며느리로 맞이하는 내용과 암행어사 출두를 끌어들이지 않은 것이 「이와전」과 「왕경룡전」이 크게 다른 점이다. 이러한 차이는 그 주제의식이 근본적으로 상이함을 뜻한다.
「이와전」은 이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불행하게 된 사람을 도와 출세시킨다는 기녀의 순정에 대한 재인식을 강조하였으나, 「왕경룡전」은 끝까지 기녀를 관인(官人)의 예속물로 다루어 흥미본위로 끝맺고 있다.
이 소설은 기녀의 순정과, 기녀에게 빠져 몰락과 상승의 길을 걷는 한 도령의 행로를 흥미있게 엮은 애정소설이다.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쳐 「청루지열녀」·「왕어사경룡전」 등으로 번역되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