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한성부판윤,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89년 다시 등용되어 동지사(冬至使)의 부사로 정사 이성원(李性源)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온 뒤 대사헌, 함경도관찰사, 병조·형조·공조의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797년 예조판서 재직시 영릉(寧陵)의 보수문제와 관련하여 파직당하였으나 바로 복직되어 한성부판윤에 올랐다.
이 때 장적편찬자료(帳籍編纂資料)인 호적단자(戶籍單子)의 소실사건이 발생하여, 이에 대한 책임으로 전 한성판윤 김문순(金文淳)과 함께 포천에 유배되었다. 그 뒤 곧 풀려나와 개성부유수·전라도관찰사·판중추부사 등을 거쳐 1800년(순조 즉위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문장에 뛰어났고 시에도 능하였으며, 육서(六書)에 정교하고 특히 해서(楷書)를 잘 썼다. 당시 사대부들의 금석문에는 그의 글씨가 많다. 저서에는 『천은난고(天隱亂稿)』 1책이 있고, 자신이 편집하여 엮은 시집 『창주한영(滄洲閒咏)』 1책, 그리고 그의 편저로 알려져 있는 시집 『산수영(山水影)』 등이 있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규장각한국본도서해제(奎章閣韓國本圖書解題)』 Ⅰ·Ⅲ(서울대학교도서관, 1982)
- 『한국고사대전(韓國故事大典)』(김순동, 회상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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