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장의를 역임하였으며, 신임사화 때 소론의 탄핵으로 처형된 유생.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20년(경종 즉위년) 성균관장의(成均館掌議)로서 이이명(李頤命)이 편찬한 숙종의 지문(誌文)이 또한 편파적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상소하고, 유생들을 선동하여 권당(捲堂: 동맹휴학)하였다. 이듬해 신임옥사에 김일경(金一鏡) 등 소론의 탄핵으로 사형되었다.
당시 윤봉구(尹鳳九)가 문화현령으로 있으면서 윤지술의 죽음 소식을 듣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전(傳)에 연고 없이 선비를 죽이면 사대부는 자리를 떠나야 한다고 하였는데 나는 사대부는 못 되지만 떠나야 하겠다.” 하고 벼슬을 버리고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
윤지술·임창(任敞)·이의연(李義淵)을 가리켜 신임(辛壬)의 삼포의(三布衣)라고 불렀다. 1725년(영조 1) 노론이 집권하자 신원되고, 1802년(순조 2) 사현사(四賢祠)에 제향되었다. 1841년(헌종 7)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정민(正愍)이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속조야집요(續朝野輯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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