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3년(고종 40)에 몽고군이 양근성(楊根城: 지금의 경기도 양평)을 포위하자 방호별감(防護別監)으로서 나가 싸웠으나 항복하고, 오히려 몽고의 정예군 600여명을 거느리고 와서 군량을 준비하였다.
또한 원주 방호별감 정지린(鄭至麟)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성을 더욱 굳게 지키니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1256년에 몽고군으로부터 도망해와서 최씨무신집정자 최항(崔沆)에게 “섬 안에 둔전(屯田)을 설치하여 농사도 짓고 지키면서 청야(淸野: 들의 작물을 거두거나 가옥을 철거하여 쳐들어오는 적에게 양식 또는 宿舍의 편의를 주지 아니함)하며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라고 하니 최항이 이를 옳게 여겨 쌀 200석, 콩 100석을 주고 친종장군(親從將軍)에 제수하였다. 그 뒤 몽고에서 윤춘을 요구하였지만, 먼 섬에 유배되었다는 핑계로 내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