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춘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후기 방호별감, 친종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몽고군의 침입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방호별감(防護別監)|친종장군(親從將軍)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선 (성신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후기 방호별감, 친종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253년(고종 40)에 몽고군이 양근성(楊根城: 지금의 경기도 양평)을 포위하자 방호별감(防護別監)으로서 나가 싸웠으나 항복하고, 오히려 몽고의 정예군 600여명을 거느리고 와서 군량을 준비하였다.

또한 원주 방호별감 정지린(鄭至麟)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성을 더욱 굳게 지키니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1256년에 몽고군으로부터 도망해와서 최씨무신집정자 최항(崔沆)에게 “섬 안에 둔전(屯田)을 설치하여 농사도 짓고 지키면서 청야(淸野: 들의 작물을 거두거나 가옥을 철거하여 쳐들어오는 적에게 양식 또는 宿舍의 편의를 주지 아니함)하며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라고 하니 최항이 이를 옳게 여겨 쌀 200석, 콩 100석을 주고 친종장군(親從將軍)에 제수하였다. 그 뒤 몽고에서 윤춘을 요구하였지만, 먼 섬에 유배되었다는 핑계로 내어주지 않았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