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로 자신이 평생에 지은 저서를 모아 손수 편찬한 것이라고 하나, 지금은 일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이 책의 규모는 『고려사』의 이인로 열전에 의하면 원집 20권, 후집 4권의 방대한 저술이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아들 세황(世黃)의 「파한집발(破閑集跋)」에 의하면, 고부(古賦) 5수, 고시와 율시 1,500여 수였다고 전한다. 이제현(李齊賢)이 지은 권보(權溥)의 묘지명에 “은대시집 20권을 주(註)하였다.”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권보에 의하여 주석작업이 진행된 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목은문고(牧隱文稿)』의 「증김경숙비서시서(贈金敬叔秘書詩序)」라는 글에 “공장(工匠)의 졸렬함과 권질(卷秩)의 무거움은 은대집·상국집(相國集)에서 볼 수 있다.”고 한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과 함께 이 문집은 방대한 저작의 대표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려사』에서는 『쌍명재집(雙明齋集)』 3권, 『파한집』 3권이 세상에 행하여진다고 하여, 조선 초기까지만 하여도 이 책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으나, 그 이후에는 그것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
기로회(耆老會)에서 지은 잡저만을 묶은 『쌍명재집』, 그리고 당시의 시화·일사인 『파한집』과 함께 이인로의 대표적인 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