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後漢書)』와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예조(濊條)에 보인다. 예에는 대군장(大君長)이 없고 대신 후(侯)·삼로(三老)와 함께 읍군(邑君)이라는 관리가 있어 이들이 하호(下戶)를 통치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삼국지(三國志)』 한조(韓條)에는 경초연간(景初年間, 237∼239)에 명제(明帝)가 대방태수 유흔(劉昕)과 낙랑태수 선우사(鮮于嗣)를 몰래 파견하여 낙랑·대방의 두 군을 평정하고, 우리나라의 여러 신지(臣智)들에게 읍군의 인수(印綬)를 더해주고, 그 다음 사람들에게는 읍장(邑長)의 벼슬을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로 보아 읍군·읍장은 삼로·후 등과 함께 토착민 세력의 규모와 크기에 따라 구분되어 봉해진 중국식 관직명으로 여겨진다.
또, 『후한서(後漢書)』 한조에서는 후한의 광무제(光武帝)가 소마시(蘇馬諟)를 한(韓)의 염사읍군(廉斯邑君)으로 삼아 낙랑군에 소속시켜 철마다 조알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읍군이라는 명칭이 여러 군데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