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하류의 정곡면 좁은 평야에 계곡을 따라 고인돌이 한 줄로 분포되어 있었으나 1989년 4월 의령읍에서 창녕읍으로 연결하는 도로확장포장공사를 하던 중 고인돌의 상석(上石)이 이동되고 유구가 일부 파손되어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긴급구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고인돌은 산기슭의 낮은 평야에 개간된 경작지 위에 6∼7기씩 떼지어 있었는데, 북쪽 오방리 고인돌군이 연결되어 있다. 당시 도로편입지역에 있는 9기를 조사했으나 제7호분만 상석이 이동되지 않아 기반식(碁盤式)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나머지는 확실한 구조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하 묘실(墓室)의 구조파악은 가능하였다. 제3호분은 판석으로 조립된 석관형(石棺形)이고, 제1ㆍ4ㆍ6호분은 냇돌로 쌓은 석곽형(石槨形)이며, 제2ㆍ5ㆍ7ㆍ9호분은 토광형(土壙形)이다. 유물은 제1호분에서 단도마연(丹塗磨硏)의 작은 단지, 제3호분에서 유병식마제석검(有柄式磨製石劍), 제6호분에서 마제석촉(磨製石鏃), 제9호분에서 구슬이 각각 출토되었다.
그 중 단도마연토기는 우리나라 남부지방 고인돌에서 자주 출토되는 구연부가 외반(外反)되고 몸통이 둥글면서 양쪽에 흑반(黑斑)이 있으며, 기벽(器壁)이 매우 얇은 소호(小壺)와 매우 닮았다. 유병식마제석검은 점판암제(粘板岩製)로서 자루 중간에 홈이 패고 양끝부분에 돌출이 적으면서 검신(劍身)은 장대한 것이다.
석촉은 촉신이 짧고 넓으며 단면은 마름모꼴이고 짧은 슴베의 단면은 육각형이다. 구슬은 푸른색을 띠는 천하석제(天河石製)로서 원형(圓形)이다.
유구와 출토유물의 특징으로 미뤄볼 때, 이 곳 고인돌은 서기전 5세기 중반에서 서기전 4세기 전반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청동기시대 남강유역의 문화양상을 파악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