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강압에 의하여 1905년 체결된 을사조약을 계기로 국권상실의 위기를 직감한 당시 우리 민족의 선각자ㆍ지도자들은 국권회복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특히 구국을 위한 교육운동을 맹렬히 전개하였다. 이 같은 교육구국운동에 따라 1906년부터 1910년 말까지 전국에 수천여 개의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렇게 신설된 사립학교 중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학교가 여러 곳에 있었는데, ‘의성’이란 명칭을 가진 학교도 6개나 되었다. 1906년 평양에 의성학교가 신설되었고, 1907년 함경남도 길주와 함경북도 북청에 각각 의성학교가 설치되었으며, 1908년 평안남도 강서와 충청남도 직산에도 각각 의성학교가 신설되었다.
1908년 10월 충청남도 직산 성환의 유지들이 의성학교를 설립하고 의친왕(義親王)을 교장으로 추대하였다. 의친왕은 의성학교의 재정상태가 취약하다는 것을 듣고 금화 1,000환을 하사하여 경영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고 교사를 신축하게 하였다.
1907년 8월 함경남도 길주군의 태성상회 내에 상업계에 종사하는 청년자제들을 교육할 목적으로 상업학교로 의성학교가 설립되었다. 의성학교에서는 국문ㆍ산술ㆍ사지(史誌) 등의 교과목과 상업에 필요한 교과목으로 교육을 실시하였다. 당시 의성학교에는 50여 명의 학생이 상업교육을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