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부윤(開城府尹)을 지낸 최석조(崔錫肇)·최문식(崔文植)·이승원(李升遠) 등이 1906년 4월 최석조의 집에 여교사를 채용하여 개설한 여자교육기관으로서, 처음에 30여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었다.
궁내부(宮內府) 내대신(內大臣)의 부인을 비롯하여 궁내부대신 내부대신(內部大臣), 한성부윤의 부인들이 발기인이 되고, 당시 일본의 고등소학교 여교사인 스즈키(鈴木登喜子)를 교사로 초빙하고, 이동초(李東初)로 하여금 스즈키를 보조케 하여 개원하였다.
일본의 교사를 초빙하여 수신, 독서, 습자, 산술, 지리대요, 물리대요, 위생, 간병, 육아, 가사경제, 가계부기 등 여자에게 필요한 교과목을 가르쳤다. 이 학원의 교과목은 일본 여학교의 교과목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현모양처'형 여성을 훈육하기 위한 교과목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