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명칭은 관립한성아어학교(官立漢城俄語學校)이며 그 위치는 서울 수하동(水下洞)이었다.
이 학교는 1895년에 공포된 「외국어학교관제」에 따라 러시아어를 가르쳐 역관(譯官)을 양성하기 위하여 1896년 2월에 설치하였으며, 수업연한은 5년, 학기는 2학기제였다. 그러나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이 오랫동안 이 학교건물을 차지하게 되었고, 교관 비루코프(Birukoff)도 본국으로 돌아가자 학생들이 모이지 않아 자연히 문을 닫게 되었다.
수학기간은 5년, 학기는 2학기제, 1899년 7월경에는 3반이 편성되었다. 교과목은 아어(습자, 회화, 번역, 서취, 작문), 러시아의 역사, 지리, 산술, 그리고 체조였다. 학습 시수는 매일 5시간이었다.
학습방법은 주입식 암기, 암송을 위주로 했고, 학력평가는 시험[月終, 졸업]과 도강(都講: 하기, 동기)으로 하였고, 평점은 교사, 교관, 부교관이 상의하여 결정하였다.
입학 연령은 15세 이상 30세 이하였고, 8년간 약 13회 모집하였다. 입학자 수는 1896년 개설 당시에 51명, 1898년 88명, 1904년 매일 출석자 평균 35명 내외였다. 아어학교의 생도수가 증가한 것은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로 러시아세력의 영향력이 증대하였기 때문이었다.
교직원은 학교장, 교관 및 부교관, 서기, 교사(외국인 교관) 등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러시아 포병대위 비루코프가 교관으로 활동하였으나, 1899년에는 그리스정교회의 한국주재 신부인 쿠라싱을 조수로 채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