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에 있는 조선후기 소와 관련된 무덤.
내용
1629년(인조 7) 선산부사 안응창(安應昌)이 근찬(謹撰)했다는 『의열도(義烈圖)』에 부사(府使) 조찬한(趙纘韓)이 쓴 ‘의우도서(義牛圖序)’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유래담이 전한다.
문수점(文殊店)에 사는 김기년(金起年)이 암소 한 마리를 길렀는데 어느 해 여름 이 소와 같이 밭을 갈고 있을 때 갑자기 숲 속에서 사나운 호랑이가 뛰어나와 소에게 덤벼들었다. 기년이 당황하여 소리를 지르며 가지고 있던 괭이로 마구 싸웠다. 호랑이는 소를 버리고 사람에게 덤벼들었다.
기년이 급하여 양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소가 크게 우짖고는 머리로 호랑이의 배와 허리를 무수히 떠받았다. 마침내 호랑이는 피를 흘리며 힘이 다하여 사람을 버리고 달아나다가 몇 걸음 못 가서 죽고 말았다.
기년은 비록 다리를 여러 군데 물렸으나 정신을 차려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20일 후에 이 상처로 말미암아 기년은 죽고 말았다. 기년이 죽기 전에 가족에게 이르기를 “내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누구의 힘이겠는가. 내가 죽은 후에도 이 소를 팔지 말고, 늙어서 스스로 죽거든 그 고기를 먹지 말며 내 무덤 옆에 묻어달라.”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소는 물린 데가 없었고, 기년이 누워 있을 때는 스스로 논밭 일을 하더니 주인이 죽자 크게 울부짖고 마구 뛰며 쇠죽을 먹지 않더니 삼일만에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놀라 이 사실을 관에 알렸는데 부사 조찬한이 그 사실을 돌에 새겨 무덤가에 세웠다. 이르기를 ‘의우총’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 의우총은 봉분과 비만 퇴락한 채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94년 선산군에서 봉분에 흙을 덧씌우고 깨끗하게 단장하여 후인의 교육용으로 정비하였다. 봉분의 밑둘레 직경이 2m 가량 되며 의우도를 화강암에 새겨 보존하고 있다.
참고문헌
- 『의열도(義烈圖)』
- 『일선지(一善誌)』
- 『선산군지』(선산군지편찬위원회, 196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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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책 따위를 삼가 지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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