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1994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25번 국도를 따라 선산읍을 향하여 가면 국도 변에 있다. 묘를 설치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인조 연간에는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629년(인조 7) 선산부사 안응창(安應昌)이 근찬(謹撰)했다는 『의열도(義烈圖)』에 부사(府使) 조찬한(趙纘韓)이 쓴 ‘의우도서(義牛圖序)’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유래담이 전한다.
문수점(文殊店)에 사는 김기년(金起年)이 암소 한 마리를 길렀는데 어느 해 여름 이 소와 같이 밭을 갈고 있을 때 갑자기 숲 속에서 사나운 호랑이가 뛰어나와 소에게 덤벼들었다. 기년이 당황하여 소리를 지르며 가지고 있던 괭이로 마구 싸웠다. 호랑이는 소를 버리고 사람에게 덤벼들었다.
기년이 급하여 양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소가 크게 우짖고는 머리로 호랑이의 배와 허리를 무수히 떠받았다. 마침내 호랑이는 피를 흘리며 힘이 다하여 사람을 버리고 달아나다가 몇 걸음 못 가서 죽고 말았다.
기년은 비록 다리를 여러 군데 물렸으나 정신을 차려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20일 후에 이 상처로 말미암아 기년은 죽고 말았다. 기년이 죽기 전에 가족에게 이르기를 “내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누구의 힘이겠는가. 내가 죽은 후에도 이 소를 팔지 말고, 늙어서 스스로 죽거든 그 고기를 먹지 말며 내 무덤 옆에 묻어달라.”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소는 물린 데가 없었고, 기년이 누워 있을 때는 스스로 논밭 일을 하더니 주인이 죽자 크게 울부짖고 마구 뛰며 쇠죽을 먹지 않더니 삼일만에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놀라 이 사실을 관에 알렸는데 부사 조찬한이 그 사실을 돌에 새겨 무덤가에 세웠다. 이르기를 ‘의우총’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 의우총은 봉분과 비만 퇴락한 채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94년 선산군에서 봉분에 흙을 덧씌우고 깨끗하게 단장하여 후인의 교육용으로 정비하였다. 봉분의 밑둘레 직경이 2m 가량 되며 의우도를 화강암에 새겨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