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령. 성은 남씨(南氏). 당호(堂號)는 의유당(意幽堂). 남편은 신대손이다.
남편 신대손의 누이가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의 친정숙부인 홍인한(洪麟漢)에게 출가했으므로 혜경궁홍씨의 숙모에게는 친정올케가 되며, 형부인 김시묵(金時默)이 정조(正祖)의 비인 효의왕후(孝懿王后)의 친정아버지이므로 왕후의 이모가 되는 명문벌열가문 출신이다.
남편이 함흥판관(咸興判官)으로 부임할 때 함께 가서, 아름다운 경관과 옛 유적을 두루 여행하며 기록한 기행문과 그 밖의 전기·번역 등을 수록한 『의유당관북유람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약칭 : 의유당일기)의 작자다.
처음에는 의유당의 정체를 김반의 딸이며 순조 때 함흥판관을 지낸 이희찬(李羲贊)의 부인 연안 김씨(延安金氏, 1765∼1792)로 추정했었다. 그러나, 『의유당일기』 속의 「동명일기(東溟日記)」와 「낙민루(樂民樓)」에 나오는 연대와 이희찬의 함흥판관 부임연대가 다르고, 이희찬이 부임했을 때에 연안 김씨는 이미 사망했다는 점을 들어 부정되어 오다가 최근에 신대손(申大孫)의 부인 의령 남씨(宜寧南氏)로 고증됐다.
자연 풍경을 묘사함에 있어서 지적이며 섬세하고 진지한 표현과 참신한 어휘구사력이 돋보인다는 평이 있다. 또 작품에서 자유분방한 의기가 돋보인다. 특히, 46세 되던 1772년(영조 48)에 지은 대표작 「동명일기」에서의 일출과 월출 장면의 묘사는 절묘하며 사실적이다. 이는 국문 수필문학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노후의 저작인 한시·한문 문장·한글 작품 등은 죽은 뒤 『의유당유고』로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