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적은 1950년 박경원(朴敬源)에 의해 그 소재가 밝혀진 곳으로 속칭 ‘팔바위[八巖]’로 알려진 곳이다. 그 중 삼진중학교 운동장 가운데 있던 1기가 1956년에 조사되었다.
혈암질(頁岩質)의 상석(上石)은 표면과 저면(底面)이 평탄하고 장축 2.85m, 단축 1.9m, 높이 0.8m에 달하는 거대한 암괴였다. 지하 묘실(墓室)로 추측되는 상형석관(箱形石棺) 상석에서 동쪽으로 약 1m 가량 떨어진 거리의 지하 75㎝의 위치에서 개석(蓋石)이 발견되었는데, 대략 동서방향이었다.
조사 당시는 이미 상석을 매몰하기 위해 그 지면을 교란시켰기 때문에 상석의 현 위치가 원위치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지석(支石)의 유무, 기타 상태 등은 알 수 없었다. 석관은 두께 3㎝ 내외의 점판암(粘板岩)으로 만든 평판암 6매로 구성되었다.
1매의 상석(床石)에 4매의 측판암(側板岩)을 수직으로 세우고 그 위에 넓은 뚜껑을 덮었으며, 뚜껑 위에는 측판암을 방형으로 떼어낸 작은 판석편을 여러 조각 합쳐서 두 겹으로 덮었다. 규모는 채굴 전에 계측한 바에 의하면 내부 길이 175㎝, 너비 42㎝ 가량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관의 저면에는 두께 2㎝ 가량의 세토(細土)가 침전되어 있었는데, 석검 1점 외에는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석관이 발견된 부근의 흙 속에서는 홍도(紅陶)의 파편들이 무수히 흩어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또한 석관의 주위와 저면의 땅 속에는 지름 5㎝ 내외의 역석(礫石)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것이 석관에 따른 적석(積石)인지 아니면 자연석으로서 혼입된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