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흥향교 대성전

  • 예술·체육
  • 유적
  • 조선 후기
  • 시도문화유산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에 있는 조선후기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문묘. 교육시설.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백영흠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8일
군위 의흥향교 대성전 전경 미디어 정보

군위 의흥향교 대성전 전경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에 있는 조선후기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문묘. 교육시설.

내용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 198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의흥향교는 1398년(태조 7)의흥면 읍내동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1년(선조 34)에 중건하였다.

그 뒤 1614년(광해군 6)에 하리촌(下里村)으로 옮겼다가 1641년(인조 19) 현 위치로 다시 이건하였다. 대성전은 이때 건립된 건물인데, 1957년 ·1968년 ·1977년에 각각 중수하였다.

대성전의 평면은 전면툇간(前面退間)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전면 반칸은 툇간으로 개방시키고, 후면은 6칸을 통간(通間)으로 처리하여 내부공간을 형성하였으며 바닥에는 장마루를 깔았다.

막돌허튼층쌓기한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柱礎)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민흘림기둥이다. 가구는 5량가의 주심포계(柱心包系) 건물이다.

대량(大樑) 위에는 접시받침을 놓고 포대공(包臺工)을 세워 종량(宗樑)을 받게 하고, 종량 위에는 파련대공(波蓮臺工)을 세워 장여와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공포는 주심포(柱心包)로서 전면과 배면의 주두(柱頭 : 대접받침) 위에만 결구되어 있는데, 전면은 외이출목(外二出目)의 5포작(五包作)이며, 배면은 외일출목 3포작이다. 문얼굴은 전면에만 있는데, 전면 3칸에 각각 문틀을 내고 통판문을 달았다.

하방(下枋)에는 문을 달기 위해 둔테를 설치하였는데, 하방의 둔테는 하방재(下枋材)와 한몸으로 된 통둔테를 사용하였다. 대성전 안에 봉안하고 있는 위패는 임진왜란과 6·25 때 선암산(船巖山)의 바위굴에 옮겨두어 무사히 보존해 온 것으로, 경상북도의 향교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립 당시의 위패이다.

참고문헌

  • - 『경상북도의 향교건축(남서부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 - 『경북향교지(慶北鄕校誌)』(경상북도, 1992)

  • - 『군위의흥향교대성전실측조사보고서(軍威義興鄕校大成殿實測調査報告書)』(군위군, 1989)

  • - 『경상북도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慶尙北道文化財指定調査報告書)』(경상북도, 1985)

  • - 국가유산청(www.khs.go.kr)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