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동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전기 함경도절도사, 경기도관찰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자준(子俊)
  • 시호헌무(憲武)
인물/전통 인물
  • 본관평창(平昌)
  • 사망 연도1506년(중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창성부사|동부승지|형조참판|선전관|함경도절도사|대사헌|경기도관찰사|병조판서
  • 출생 연도1450년(세종 3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송정현 (전남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전기 함경도절도사, 경기도관찰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평창(平昌). 자는 자준(子俊). 1470년(성종 1)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훈련원판관에 임명되었다. 1476년 무과 중시에 급제해 종친부전첨(宗親府典籤)이 되었다가 창성부사로 나갔다.

이 해 10월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의 부사로 대마도에 갔다가, 정사 이형원(李亨元)이 병으로 죽자 일을 잘 처리하고 돌아왔다. 같은 해 황해도관찰사로 나가게 되었으나 경력이 없어 동부승지로 임명되었다가, 도원수 윤필상(尹弼商)의 종사관으로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고 돌아와 형조참판에 승진하였다. 1479년 선전관이 되었다.

1480년 주문부사(奏聞副使)로 중국으로 떠나기 전의 사연(賜宴: 베풀어준 향연)에서 불경한 행동으로 전라도 해남현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이듬 해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쓴 성종의 명으로 동지중추부사로 임명되었다. 1482년 여진어에 능통하고 그들의 사정을 잘 안다는 점이 인정되어 함경도절도사로 임명되었다.

이 때 여진을 성심으로 대해 재임 중 그 지역이 안정되었으며, 뒷날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에는 모련위(毛憐衛)의 여진인들이 늘어서서 인사를 할 정도로 신망을 받았다. 1486년 좌윤이 되어 정조사(正朝使)의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도상중원교사지법(圖上中原敎射之法)』을 필사해 왕에게 바쳤다.

1487년 형조참판을 거쳐 전라도병마절도사로 나갔다. 1489년 황해도에서 김경의(金京儀)·김막동(金莫同)가 도적을 일으켰을 때 금제사(擒制使)로 파견되어, 구질포지산(仇叱浦只山)을 공격해 우두머리를 체포하는 등 적을 소탕하고 돌아와 포백(布帛)과 무기를 상으로 받았다. 1490년 무과 출신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사헌에 임명되었다.

이듬 해 야인(野人) 이마거(尼麻車)가 조산(造山)에 침입했을 때 윤필상의 추천으로 부원수가 되어, 도원수 허종(許琮)을 보좌해 토벌에 나섰다. 이 때 큰 성과는 없었으나 돌아와 형조판서에 올랐다. 1492년 경기도관찰사로 나갔을 때, 계속된 흉년으로 도둑이 들끓자 연로수직법(沿路守直法)을 만들어 검색을 강화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494년 지중추부사로서 성종이 죽자 고부사(告訃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중국의 무기 통제나 조선에 대한 태도 등에 대해 보고하였다. 1498년(연산군 4) 병조판서에 임명되었으며, 이듬 해 왕명으로 이극균(李克均)과 함께 『서북제번기(西北諸藩記)』와 『서북지도(西北地圖)』를 편찬해 올렸다. 1500년 병으로 병조판서에서 물러났다.

병조판서 재임 시에 특히 북방에 관한 여러 시책에 관심을 기울였고 용의주도한 대비를 하였다. 1504년 우찬성이 되었다가 이듬 해 좌찬성과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무신으로 크게 활약했으며 독서에도 힘써, 당시 문무를 겸했다는 칭찬을 들었다 한다. 시호는 헌무(憲武)이다.

참고문헌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