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지공거, 중추사, 상서좌복야 겸판동경유수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1021년 8월에 산기상시(散騎常侍)로서 지공거가 되어 진사를 취하고, 복시에서 갑과 조패(趙覇)와 병과 1인, 동진사 5인과 명경 4인에게 급제를 주었다. 또, 같은 해 9월에 중추사로서 병부시랑 유종(柳琮)과 함께 거란에 가서 책봉받은 것을 축하하고 돌아왔다. 이듬해 2월 이부상서가 된 후 서경유수, 내사시랑평장사 감수국사,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하였다.
1031년(덕종 즉위) 10월에 상서좌복야 겸판동경유수사(尙書左僕射兼判東京留守事)로서 재물을 횡령하고 또 가노(家奴)로 하여금 역마를 빌려 타게 하였다는 어사대(御史臺)의 탄핵을 받았다.
1035년(정종 1)에 7월 상서이부(尙書吏部)의 상소로 복직되었다가 어사대의 탄핵으로 파면당하였다. 이듬해 4월 선조(先朝)의 재상으로서 오랫동안 문한(文翰)의 책임을 맡았다 하여 왕명으로 관작이 회복되자마자 곧 치사(致仕)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