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지(修之), 호는 계은(桂隱). 아버지는 전공판서 이원발(李元發)이며, 동생은 호조판서 이귀산(李貴山)이다.
고려 말에 판선공시사(判繕工寺事)와 청주 등지의 관군만호(管軍萬戶)를 지냈다.
1392년(태조 1) 조선이 개국되어 태조가 즉위하자 잠저 때의 공으로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었다. 1394년 중군사마(中軍司馬)를 거쳐 뒤에 형조와 예조의 전서(典書)를 지냈고, 지방으로 나아가 길주도도안무찰리사(吉州道都安撫察理使)와 동북면도순문병마도절제사(東北面都巡問兵馬都節制使) 등을 지냈다.
태종 때 원종공신이 되어 두번이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판승녕부사(判承寧府事)·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병조판서·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판좌군도총제부사(判左軍都摠制府事)·변정도감제조(辨定都監提調)·삼군판부사(三軍判府事) 등을 지냈다.
1415년(태종 15) 검교우의정(檢校右議政)을 거쳐, 이듬해 검교좌의정(檢校左議政)이 되었다가 곧이어 좌의정으로 사직하였다. 관직을 그만둔 뒤 20여 년을 한거하다가 94세로 죽으니 나라에서는 이틀 동안 조회(朝會)를 정지하고 조의를 표하였다. 시호는 강호(康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