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 위치한다. 원래 경기도 장단(長湍)에 있던 것을 1728년(영조 4)에 산본동 16번지 근처로 이장했다가, 1992년 산본 신도시 건설로 지금의 위치에 조성하였다. 1990년 4월 30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한산이씨 총대종회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이기조(李基祚, 1595~1653)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호는 호암(浩菴)이다. 1615년(광해 7) 문과에 급제하였고, 인조반정(仁祖反正) 후에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웠으며, 형조좌랑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이후 경상도 관찰사와 예조판서에 이르렀으나, 김육 등의 탄핵으로 함경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1653년(효종 5) 공조판서에 임명되어 함경도에서 돌아오던 중 김화(金化)에서 병사하였다. 딸은 양명학의 거두이자 강화학파의 시조인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와 혼인하였다.
묘역의 면적은 1,126㎡이다. 봉분은 단분(單墳)으로, 부인 고령신씨(高靈申氏)와의 합장묘이다. 봉분 앞에 조성된 석물로는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이 각1기가 있고 그 앞으로 좌우에 동자석(童子石), 망주석(望柱石), 문인석이 각각 한 쌍씩 있으며 묘에서 약 30m 떨어진 곳에 신도비 1기가 있다. 재질은 모두 화강암이다.
비문은 숙종 때 좌의정을 지내고 예학에 밝았던 박세채(朴世采)가 글을 짓고 손자 이명칠이 글씨를 썼으며 1705년(숙종 31) 영의정을 지내고 평천군(平川君)에 봉해진 외손자 신완(申琓)이 전액(篆額)을 써서 건립하였다.
이곳의 묘역은 경기도 장단에 있다가, 1728년(영조 4)에 산본동 16번지로 이장되었다. 그러나 1992년 군포시 산본 지역의 택지 건설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장(移葬)하게 되었다. 특히, 묘역을 이장하기 직전에 도 기념물로 지정되어서 발굴이 함께 이루어졌다.
발굴조사 결과 봉분은 전면과 좌·우면에 장대석(長臺石)을 이용한 호석(護石)이 둘러져 있었고, 봉분 좌측 가장자리 호석 바깥쪽에서 청화백자(靑畵白磁)로 만든 직사각형 판형(板形)의 묘지석(墓誌石) 14매(枚)가 출토되었다. 내부 구조는 회벽(灰壁)을 2칸으로 구축한 다음, 그 안에 각각 목관(木棺)을 안치한 회곽묘(灰槨墓)로 조성되었다.
또한 묘지석의 내용을 통하여 원래의 묘역이 1728년(영조 4)에 이장되어 조성된 것이 확인되었고, 이 묘역의 형태는 조선 중기의 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