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사범대학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68년 장익(張翼) 신부의 주선으로 오스트리아의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 공방으로 가서 가톨릭 성(聖)미술의 유리그림 기법을 정통으로 수업했다. 그 뒤 파리에서 2년간 머물며 선명한 색상의 서정적 추상 회화를 새롭게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그 성향의 작품 창작을 변화 있게 지속하였다.
1970년에 귀국한 후 개인전과 가톨릭미술가회전 · 앙가즈망(engagement)전 참가를 통해 발표한 회화 작품들은 심상적(心像的)인 색상을 수반한 짧고 생동적인 붓놀림의 곡선과 점 그리고 깊은 공간감이 자율적 형상으로 조화를 이루었다.
그의 명제(命題)는 1970년의 파리 개인전 때부터 줄곧 「작품」으로 일관되었다. 그 표현 정신과 내면적 감성은 1978년부터 지속적으로 병행된 유리그림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유리그림의 명확한 장식적 균형의 형상 및 성서적 주제의 구현과는 달리, 회화에서는 서예적인 필치의 순수한 유동적 질서와 공간적 생동감으로 작가의 마음의 움직임과 자연세계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정신적 상상력을 자유롭게 반영시켰다.
한국에서 가톨릭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정통으로 창작한 개척자로서, 서울의 혜화동 성당(1978년), 시흥동 성당(1979년), 명동 대성당(1980∼1984년), 가좌동 성당(1988년), 논현동 성당(1988년), 응암동 성당(1990∼1991년), 전주의 노송동 성당(1978년), 인천 부평의 가르멜수도원(1979년) 등의 작품을 남겼다. 이 유리그림들에서는 찬란한 빛의 색상미 창출과 성상 주제, 또는 성스러운 장식적 형상 구성에서 평면성을 넘은 회화적 표현이 창의적으로 이루어져 예술성을 높였다.
원광대학교과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과 교수, 가톨릭미술가회 회장(1988∼1991)을 역임하였고, 상파울루 비엔날레(1970) 등 여러 국제 미술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1995년 예술의 전당에서 『한국 종교미술제 작고작가 초대전』이 개최되었으며, 2003년에는 가나아트센터에서 『이남규 회고전』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