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0월 육군 참령(參領)으로서 시종(侍從) 임최수(林最洙), 전 전주진위대(全州鎭衛隊) 중대장 이민굉(李敏宏), 전 위원(委員) 이충구(李忠求), 탁지부 사계국장(司計局長) 김재풍(金在豊), 사과(司果) 이세진(李世鎭) 등과 함께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친일개화파를 몰아내려는 정변인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을 기도하다 체포되었다.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에서는 시종원경(侍從院卿) 이재순(李載純)으로부터 고종의 밀칙(密勅)을 전달받고 거사하였다고 한다. 같은 해 11월 법부(法部) 특별법원에서 모반률(謀反律)로 교수형 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 1896년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망명으로 친일개화파 정권이 몰락하자, 관련된 인사들은 석방되고 이미 처형된 이도철과 임최수의 관작이 복구되었다.
같은 해 4월 내각(內閣)의 주청(奏請)에 따라 가족들에게 휼금(恤金)이 지급되었고, 군부 협판의 관직과 충민(忠愍)이라는 시호(諡號)가 추증되었으며, 1898년에는 그 아들에게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1901년(광무 5) 육군법원장(陸軍法院長) 백성기(白性基)의 상소에 따라 장충단(奬忠壇)에 모셔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