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평산 출신. 1923년 천도교를 중심으로 손병희의 유업을 계승할 목적으로 창설된 고려혁명위원회(高麗革命委員會)에 참여하여 해외조직부장이 되었다.
1924년 만주로 망명하여, 1926년 고려혁명위원회의 김봉국(金鳳國), 노령(露領)의 이규풍(李圭豊), 정의부(正義府)의 양기탁(梁起鐸)·오동진(吳東振) 등과 고려혁명당을 창당, 그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6년 장춘(長春)에서 일본경찰에 붙잡혀 1928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 뒤 1945년 남천서(南川署)에 예비구금되었다가 광복을 맞았다.
1963년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