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아버지는 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 이공진(李公晉)이며, 어머니는 정광조(鄭光祖)의 딸이다.
1419년(세종 1)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 승문원박사가 되었으며, 한문훈해(漢文訓解)에 정통하여 부교리에 올랐다.
1427년에 사역원판관이 되어, 이로부터 항상 승문원과 사역원의 직을 겸임하였다. 이어 전농시판관(典農寺判官)·호군·봉상시윤(奉常寺尹)·대호군·예문관직제학·우사간·호조참의·공조참의를 지냈다. 1448년에 중추원부사가 되고, 예조·이조·공조·병조의 참판을 거쳐, 경창부윤(慶昌府尹)·형조판서를 지냈다.
1456년(세조 2)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뒤, 공조판서·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판중추원사를 지냈고, 1467년 궤장(几杖)을 하사받았으며, 1472년(성종 3)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이르렀다. 화어(華語)에 능통하여 중국에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시호는 정정(貞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