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중항(仲恒). 아버지는 이팽년(李彭年)이며, 어머니는 여씨(呂氏)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장 가토[加藤淸正]의 병사가 관북(關北)으로 밀어닥쳐 여러 고을을 함락하고, 회령 사람인 국경인(鞠景仁) 등이 두 왕자와 재신(宰臣) 및 장리(長吏)를 사로잡아 항복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이 소식을 듣고 거사계획을 세우던 차에 북평사 정문부(鄭文孚)를 만나 강문우(姜文祐), 종성부사 정현룡(鄭見龍)과 함께 창의기병(倡義起兵)하여 정문부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별장이 되었다.
9월 부령을 수복하여 국경인 등의 목을 베고, 11월 길주 장평(長坪)에서 승리하고, 12월 쌍포(雙浦)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1593년(선조 26) 1월 단천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적병이 후퇴, 남하하기 시작하자 이를 추격하여 옥탑평(玉塔坪)에서 싸우다가 적의 탄환에 맞아 전사하였다.
1665년(현종 6) 당시 함경도관찰사 민정중(閔鼎重)이 임진왜란 때에 충절을 다한 이 지방 인물들에 대하여 포상하여줄 것을 건의함에 1666년 사헌부지평에 추증되고, 경성 창렬사(彰烈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