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벽동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일본경찰의 감시를 피하여 만주로 건너가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및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소속으로 활약하였다.
만주에서도 일제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압박이 가열하여지자, 활동무대를 북중국 방면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동지들과 함께 자금조달공작을 하던 중 1932년 만주 안동(安東)에서 일본경찰에 잡혀 1933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았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