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초기의 화가 이상좌(李上佐)가 그린 것으로 전하는 화첩.
개설
내용
채색은 가하지 않고 묵선(墨線)만으로 나한(羅漢)을 그렸다. 처음에는 담묵(淡墨)으로 밑바탕을 그리고, 다시 그 위에다 농묵(濃墨)으로 그렸다. 현재는 5점만 남아 있으나, 각 나한의 머리 위에 묵서한 번호로 미루어보아 16나한상을 그렸던 것 같다.
제3나한인 가나가바라타자(迦諾迦跋釐墮闍, Kanaka-bharadvāja)는 왼쪽으로 몸을 틀고 유희좌(遊戱坐)에 가까운 모습으로 앉아 있다. 두 손으로는 불자(拂子)를 잡고 있다.
제4나한 수빈다존자(蘇頻陀尊者, Subinda)는 노승으로 제3나한과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발(鉢)을 받쳐 들었다. 부리부리한 눈과 큰 코가 매우 특징적이다.
제5나한 나쿠라존자(諾距羅尊者, Nakula)도 역시 노승의 모습이다. 비스듬히 앉아 오른손으로는 맹수의 머리를 쓰다듬고, 왼손으로는 똑바로 석장(錫杖: 중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을 잡고 있다.
제12나한 나가세나존자(那伽犀那尊者, Nāgasena)는 두건을 쓰고 눈을 지그시 감고 선정(禪定)에 든 노승이다. 두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아 선정인(禪定印: 두 손을 가지런히 배 앞에 모은 손 모양)을 결(結)하고 상현좌(裳懸座: 불상의 옷주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제15나한 아지타(阿氏多, Ajita)는 젊은 승려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오른손에는 부채와 같은 것을 들었으며 왼손에는 발을 들고 있다.
붓놀림이 활달하며 유려한 필치로 각 인물의 특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얼굴은 세필(細筆)로써 섬세하게 표현하고 나한들의 가사(袈裟)는 가는 선과 굵은 선을 적당하게 사용하여 강조할 곳에 악센트를 주었다.
뛰어난 묘사력과 유려한 필치로 나한들을 묘사한 이 불화묵초본은 비록 완성된 그림이 아닌 밑그림이기는 하지만, 간단하고 단순한 필선으로 그려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시대의 「오백나한도」와는 달리 활달한 기운이 넘친다. 조선 초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로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조선전기국보전-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아서(2)』(호암미술관, 1996)
- 『국보』10 회화(안휘준 편, 예경산업사, 1986)
- 『한국미술』2 조선Ⅰ(최순우, 도산문화사, 1984)
- 「왕실 발원 불화와 궁중 화원」(유경희, 『강좌미술사』 26-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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