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기언』은 『기언』으로도 불리는데, 원집 67권, 별집 2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은 허목이 스스로 편찬한 것이고, 별집은 그가 죽은 후에 그의 문인들이 만든 것이다.
이 문집은 1689년(숙종 15) 왕명에 의해서 전라도 나주 미천서원(眉泉書院)에서 처음 간행되었고, 그 후 1905년 의령(宜寧)에 사는 허찬이 중심이 되어 향토 사림의 도움으로 이의정(二宜亭)에서 중간하였다. 목판으로 간행되기 이전에, 허목의 유작은 당시 승지와 황해감사를 지낸 칠와(柒窩) 권수(權脩)에 의해 허목 선생이 돌아가신지 2년 뒤인 1684년(숙종 10)에 『미수집』10권으로 필사된 바 있는데, 이 필사한 내용은 대부분 『미수기언』에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이 의령에서 중간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허목이 병자호란 때 의령에 피난한 이래 줄곧 연고를 맺고 있었고, 둘째 이웃 산청에서는 허전(許傳, 1797~1886)의 『성재문집(性齋文集)』을 간행하였고 진주 사림들은 『주자어류(朱子語類)』 50책을 간행하는 등 선현들의 저술 간행 열의가 팽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동기는 1881년(고종 18)에 이 지방에 사는 이석홍(李錫弘)이 그의 스승인 허전의 권유로 허목이 지은 『경례유찬(經禮類纂)』을 간행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하여 1901년에 허목이 병자호란을 피해 은거하며 살았던 의령 대의면 모의(慕義)에 이의정을 지었고, 이어 1905년에 『미수기언』을 중간하였다. 그 뒤 1920년 그 자리에 영정을 모시고 춘추로 향사를 지낼 사우인 숭정사(崇正祠)와 책판을 보관할 장판각을 지었다.
『미수기언』 책판은 모두 869매로, 경상남도 의령군 대의면 중촌리 양천허씨 문중 이의정에 소장되어 있고, 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허목이 남긴 유작은 매우 많은 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년에 서실에 화재가 발생하여 상당량이 산실(散失)되고, 남은 작품이 대부분 이 『미수기언』 책판에 수록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 책판은 미수의 사상과 학문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