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자실(子實). 이추(李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계무(李季茂)이고, 아버지는 참판 이옥번(李沃蕃)이다.
1477년(성종 8) 생원시에 합격하고,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지평·병조정랑·중추부경력(中樞府經歷) 등을 역임하였다.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으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1497년(연산군 3)에 집의·전한(典翰)을 지냈으며, 이듬해 부제학·좌부승지를 지내고, 1501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한성부우윤으로 재직중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공조참판을 거쳐 중종반정 후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대사헌 재직시 원종공신의 개정을 요구하여 이를 실현시켰으며, 이어 1508년(중종 3)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개성부유수 재직중 죽었다. 평소 몸가짐이 맑고 검소하며 세상을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