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이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해 인현왕후(仁顯王后) 폐비설을 듣고 반대소를 올렸다. 소에 판서 오두인(吳斗寅)과 이세화의 이름이 전면에 올라 있는지라, 숙종은 분노하여 밤중에 친국하였다.
이세화는 국문에서 “국사로 인해 죽기를 원했는데 이제 그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하고, “다만, 신의 죽음이 성덕에 누를 끼칠까 두려우며, 신에게 용서할 수 없는 죄가 있다 하더라도 옥리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면 될 것을 밤새도록 친국하니 옥체를 상할까 두렵다.”고 형간(刑諫)하였다.
다음 날 정주로 유배가다 풀려나와 파산(坡山)의 선영 아래로 돌아왔다. 갑술환국 후 1694년 4월 대사간·호조판서에 제수되었으나 고사하고 나아가지 않다가 인현왕후 복위도감제조로 차정한다는 말을 듣고 곧 상경하였다. 그 뒤 의금부사 겸 지경연사·세자빈객에 오르고, 청백리로 선정되었다.
그 뒤 공조·형조·병조·예조·이조판서를 두루 역임하고, 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풍계(豊溪)의 충렬사(忠烈祠)에 향사되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저서로는 『쌍백당집(雙栢堂集)』이 있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지양만록(芝陽漫錄)』
- 『쌍백당집(雙栢堂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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