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자방(子芳). 형조좌참의 이양중(李養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우생(李遇生)이다. 아버지는 평안도절도사 이수철(李守哲)이며, 어머니는 관찰사 이맹상(李孟常)의 딸이다.
1459년(세조 5)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학문은 물론 활쏘기·말타기를 잘 하여 왕명으로 선전관이 되었다. 1470년(성종 1)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조정랑·도총부경력(都摠府經歷)을 역임하고, 김해부사·판교(判校)를 거쳤다.
1492년 장례원판결사, 이어 충청도·함경도 절도사, 충청도·황해도·전라도 관찰사, 부제학·우부승지를 지냈다. 1504년(연산군 10) 한성부좌윤·우윤, 이조·예조참판을 거쳐, 형조·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정국공신 3등으로 한산군(漢山君)에 봉하여지고, 우참찬으로 승진하였다.
1508년 좌참찬 재임시 재덕(才德)이 없고 늙음을 핑계로 치사(致仕)를 요청하였으나 궤장(几杖)을 하사받고 그대로 유임되었다. 그 뒤 우찬성·좌찬성을 역임하고, 1512년 일본의 화호(和好) 요청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1513년 한산부원군(漢山府院君)에 진봉되고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만년에는 영의정 유순(柳洵), 판서 안침(安琛) 등 남학(南學)의 친우들과 구로회(九老會)를 만들어 서로 왕래하며 즐겼다. 시호는 호간(胡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