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병조판서, 판중추부사, 우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92년 장례원판결사, 이어 충청도·함경도 절도사, 충청도·황해도·전라도 관찰사, 부제학·우부승지를 지냈다. 1504년(연산군 10) 한성부좌윤·우윤, 이조·예조참판을 거쳐, 형조·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정국공신 3등으로 한산군(漢山君)에 봉하여지고, 우참찬으로 승진하였다.
1508년 좌참찬 재임시 재덕(才德)이 없고 늙음을 핑계로 치사(致仕)를 요청하였으나 궤장(几杖)을 하사받고 그대로 유임되었다. 그 뒤 우찬성·좌찬성을 역임하고, 1512년 일본의 화호(和好) 요청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1513년 한산부원군(漢山府院君)에 진봉되고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만년에는 영의정 유순(柳洵), 판서 안침(安琛) 등 남학(南學)의 친우들과 구로회(九老會)를 만들어 서로 왕래하며 즐겼다. 시호는 호간(胡簡)이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 『용재집(容齋集)』(이행(李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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