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사미(士美). 이우생(李遇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평안도절도사 이수철(李守哲)이다. 아버지는 좌찬성 이손(李蓀)이고, 어머니는 용양위성호군 이계번(李繼藩)의 딸이다.
1477년(성종 8) 진사에 오르고, 1480년(성종 11)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주서(注書)·형조좌랑·예조좌랑·지평을 거쳐, 충청도도사·호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490년에 장령에 올라, 사사전세(寺社田稅)의 관수관급(官收官給)을 시행하도록 하였다.
1491년에 야인이 변경지방을 침범하자, 왕은 허종(許琮)을 도원수로 삼아 토벌하도록 하였다. 이 때 허종은 문무재략(文武才略)을 겸비한 자로서 군무를 보좌할 인물을 요청하였는데, 이 때 발탁되어 성균관사예로 전직되고 곧 종사관으로 종군, 전공을 세워 검상(檢詳)·사인(舍人)을 제수받았다.
1494년 집의로 등용되었으나 곧 파직되었다가, 조정에서 장차 서계(西界)에 둔전을 설치, 방수(防戍)를 계획하게 되자, 그 적임자로 발탁되어 교리로 기용, 파견되었다. 둔전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해주에서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