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사간,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일휴정(逸休亭)
  • 중우(仲羽)
  • 시호충헌(忠獻)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병자호란
  • 본관우봉(牛峰, 지금의 황해도 금천)
  • 사망 연도1688년(숙종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간|이조판서|우의정
  • 출생 연도1626년(인조 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남희 (한국학대학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이숙 글씨 미디어 정보

이숙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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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중우(仲羽), 호는 일휴정(逸休亭). 이지신(李之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할(李劼)이다. 아버지는 참의 이유겸(李有謙)이며, 어머니는 윤홍유(尹弘裕)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11세의 어린 나이로 포로가 되어 심양(瀋陽)에 잡혀갔다가 사신으로 간 이덕인(李德仁)의 주선으로 귀국하였다. 1648년 진사가 되고, 1655년(효종 6) 춘당대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수찬·응교 등을 거쳤다.

1667년(현종 8) 집의로 있을 때 청나라 조정이 청나라 도피인을 돌려보내지 않는 것에 대하여 조선에 책임을 물어 당시의 재상들을 벌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청나라의 지탄을 받은 영의정 정태화(鄭太和), 좌의정 홍명하(洪命夏), 진주사(陳奏使) 허적(許積) 등이 그 책임을 오히려 왕에게 돌리자, 이숙은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가 죽음으로 맞서야 하는 것이라고 하여 이들을 크게 꾸짖고 처벌하도록 청하였다.

이숙은 당시에 이들을 파직시키기를 청하였던 김징(金澄) 등 7인과 함께 8간신(諫臣)으로 불렸다. 1669년 광주부윤(廣州府尹)을 거쳐 1672년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뒤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다. 1675년(숙종 1) 서인이 실각하자 한때 물러났으나 뒤에 재등용되어 이조판서를 지냈다. 1687년 우의정에 올랐다. 대구의 상덕사(尙德祠)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참고문헌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청선고(淸選考)』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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