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이곡(李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색(李穡)이며, 아버지는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 이종학(李鍾學)이다.
1405년(태종 5) 15세로 생원시에 합격, 봉상시녹사(奉常寺錄事)·감찰을 지내고, 1420년(세종 2) 경기도경력을 역임하였다.
1422년 한성부소윤으로 있을 때 전국에 흉황이 발생하자 전라도·평안도의 경차관(敬差官)으로 파견되어 진제(賑濟)에 힘쓰고, 장령을 거쳐 1424년 전농시윤(典農寺尹)이 되었다.
이 해 이징옥(李澄玉)의 군공을 확인하고자 함경도에 파견되고, 이듬해 인순부윤(仁順府尹)·경창부소윤(慶昌府少尹)에 이어 집의를 거쳐, 1429년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지형조사(知刑曹事)·형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431년 공조·병조참의,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1433년 평안도도관찰사로 부임, 파저강(婆猪江)의 야인을 정벌할 때 군사 조달과 군량 수송에 공헌해 공조좌참판에 특진되고 관찰사직책을 그대로 겸임하였다.
이듬 해 형조참판을 거쳐 대사헌으로 있을 때, 사사(寺社)의 혁파와 사원전(寺院田)의 감축, 무격(巫覡)의 음사(淫祀) 금지, 지방관 부임시 부모 동반 금지, 사풍(士風)의 탐오(貪汚)와 여자의 부정(不貞)에 대한 제재, 사대부의 처에 대한 자녀안(姿女案: 양반 집 여자로서, 품행이 나쁘거나 세 번 이상 시집간 사람의 이름과 경력을 적어두던 문서) 기록의 철저, 호패법(號牌法) 재시행으로 간사 행위(奸詐行爲) 근절 등을 건의하였다.
1437년에 함길도관찰사가 결원되자 묘당(廟堂: 의정부)에서는 이숙치를 적임자로 추천해 다시 관찰사로 임명하였다. 재임시 함경도 입거자(入居者)를 부강한 백성들로 보내도록 건의하는 등 국방 문제에 진력하였다.
1440년 지중추부사·공조판서를 거쳐, 1442년 우참찬에 오르고, 이듬 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45년 좌참찬 겸 판호조사가 되었다. 시호는 순절(順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