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중인(仲仁). 이양(李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백겸(李伯謙)이다. 아버지는 참판 이보정(李補丁)이며, 어머니는 이숙(李淑)의 딸이다.
1453년(단종 1) 증광문과에 장원하여 사재감주부가 되고, 사간원정언을 거쳐 1459년(세조 5)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이듬해 설화사건으로 파직당하였다가 형조정랑에 재등용되고, 이조정랑·세자문학·성균관사예·중서사인(中書舍人)·사헌부집의가 되었다.
1468년 장례원판결사로 승진하고 이듬해 동부승지, 이어 좌승지가 되었다. 성종 즉위에 공이 있어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가자(加資)되고 연원군(延原君)에 봉하여졌다.
이듬해 도승지가 되고, 1474년 자헌대부(資憲大夫)에 형조판서, 1477년 대사헌, 그리고 한성부판윤을 거쳐 이듬해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이조판서가 되었다. 1485년 우참찬이 되어 정조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좌참찬이 되어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올랐다.
1489년 다시 형조판서를 지낸 뒤 1491년 병조판서가 되었다. 중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고, 1648년(인조 26) 지례의 도동사(道東祠)에 제향되었다. 홍귀달(洪貴達)이 지은 비명이 전한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