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서남(瑞南). 함경남도 함주 출생. 아버지는 이교흠(李敎欽)이며 어머니는 김성자(金成子)이다.
1922년 아버지를 여읜 뒤 함흥으로 이사 하여 영신학교(永信學校)에 입학했다. 졸업 후 일본인이 경영하는 함흥물산에서 근무하다가 1938년 대양공사(大洋公司)를 설립하여 독립자영하였다.
1942년 함흥식량영단에 근무하였으며 1947년 단신 월남하여 서울에서 과자판매업을 시작, 동양식량공사를 설립하고 수입설탕·밀가루·제과용 원료판매로 전국적인 판매망을 구축하였다. 6·25전쟁 때 인민군에 납치되었으나 탈출하여 공군군속으로 귀향하였다.
1951년 삼양물산공사를 설립하여 설탕·소맥분을 수입, 판매하던 중 1952년 국제시장 화재로 재산이 전소되었으나 이후 사업이 번창하여 ‘설탕왕’이라는 별칭을 받았다.
1953년 환도하여 풍국제과판매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54년 한국정당판매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제일제당 설탕을 독점판매하는 한편, 같은 해 삼양제당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이듬해 제일 실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956년 동양제과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으며, 같은 해 삼척시멘트주식회사를 인수, 동양시멘트공업주식회사로 개칭하였다. 1960년 동양산업개발주식회사를 설립했고, 1962년 한국경제인연합회를 창립하여 창립위원 및 이사로 취임하였다.
1963년 한국양회공업협회를 설립하여 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1964년 한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 피선되었다. 같은 해 한국 양회공판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966년 동양건설진흥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크리스찬아카데미 이사를 역임하였다.
1967년 동양제과주식회사·동양산업개발주식회사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동양종합공업주식회사와 동양상운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969년 동양도로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이이(李珥)의 동상을 사직공원에 건립해 기증하였다.
1970년 한국원자력위원회 부회장에 피임되고, 같은 해 동양내화연화주식회사도 설립하였다. 1971년 동양시멘트공업주식회사의 법정관리로 사장직을 사임했으나 같은 해 12월 법정관리 해제로 다시 회장에 취임하였고, 1972년 동양판매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975년 동양산업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으며, 1976년 동양상선주식회사의 회장에 취임하였다. 1977년 동양종합공업주식회사 회장에 취임하였고, 동양광공주식회사와 동양상운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985년 국일증권주식회사를 동양증권주식회사로 개명하였고, 1987년 동양경제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저서로는 1969년 동양철학과 경영론을 담은 『문제와 사색』이 있으며, 1973년 세계여행의 견문과 감회, 세계관 등을 담은 『제헌(濟憲)의 세계』 등이 있다.
1966년 모범상공인으로 경제기획원장관상과 5·16민족상을 받았고, 1981년 제22회 3·1문화상과 1985년 성실납세유공자로 산업포장을 받았으며, 1987년 제14회 상공의 날에 유공상공인으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