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관(景寬), 호는 농와(聾窩). 예안 출신. 이수강(李守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협(李世浹)이다. 아버지는 이황(李滉)의 8대손 이구용(李龜容)이며, 어머니는 김약일(金若鎰)의 딸이다.
1804년(순조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수찬·응교를 거쳐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그 뒤 공조참의·동부승지를 거쳐 춘천부사로 있을 때는 훌륭한 치적을 남겼다는 칭송을 들었으며, 1822년 암행어사로 지방 수령들의 부정을 철저하게 다스려 강직한 인사로 이름이 높았다. 그 뒤 대사간이 되고, 1833년 영흥부사·대사성을 지내고, 이어 1835년(헌종 1)에는 사은부사(謝恩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40년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성품이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으며, 또 근면하고 민첩하였다. 지방관으로 있을 때는 새벽에 일어나서 촛불을 밝히고 사무를 처리하였으며, 세납(稅納)에 기한을 어긴 적이 없었다.
평소에 독서를 매우 즐겨, 서가에 가득한 서책은 어느 것이나 손때가 묻어 있을 정도였다. 한편, 국사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어 정사와 야사를 두루 섭렵한 결과, 역대의 연혁·치란(治亂)과 인물의 선악을 널리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