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성주(星州). 1344년(충목 즉위년) 6월 서연(書筵)이 설치되자 장령으로서 시독관(侍讀官)이 되었다. 1356년(공민 5) 9월에는 평양도순문사로 있으면서 여진 포로 20여명을 사로잡아 바쳤다.
1358년 2월 동지추밀원사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8월 지추밀원사로 올랐다. 1361년에 홍건적의 무리 10여 만이 압록강을 건너 삭주를 침범하므로 절령(岊嶺: 자비령)에 파견되어 목책을 세우고 방비하였으나 곧 패퇴하였다.
개경이 홍건적에게 함락된 이듬해 정월 총병관 정세운(鄭世雲), 도원수 안우(安祐)의 지휘로 개경을 수복할 때 이방실(李芳實)·김득배(金得培)·최영(崔瑩) 등과 함께 참전하여 숭인문(崇仁門)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다. 이 공으로 1365년 3월 원나라로부터 봉훈대부 숭문감승(奉訓大夫崇文監丞)에 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