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전설의 하나로, 『기문총화(記聞叢話)』 · 『난중잡록(亂中雜錄)』 · 『대동기문(大東奇聞)』 · 『동야휘집(東野彙輯)』 · 『임진록(壬辰錄)』 ·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 등에 실려 있다.
이여송(李如松)은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조선을 구원해 준 구원장으로서의 성격과, 구원군이라는 명분 아래서 가지가지 횡포를 자행하였던 명나라 군대의 대변자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입장을 다양하게 설화로 형상화하여 전승하였다.
이여송을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장수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문헌 설화로서, 여기에는 이여송의 영웅적인 행위를 부각시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구비 설화에서 명나라의 군대는 민족의 적대자이며, 이여송은 조선의 이인(異人)이지만 횡포를 부리고 신에 의하여 무참하게 징계 당하는 부정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이여송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한 설화로는 그가 왜의 정탐병을 물리치고, 왜장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보낸 자객을 퇴치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계통의 설화는 일방적으로 이여송의 탁월한 능력이 묘사될 뿐, 우리 쪽의 반응이나 대응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여송이 우리 조정의 뛰어난 신하들에게 감탄한다는 설화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전한다. 다음의 두 설화에서는 조선에도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이여송으로 인하여 손상된 민족적 우월 의식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이여송은 조선에 와서도 거들먹거리며 싸울 생각을 않는다. 그러자 이항복(李恒福)이 이여송에게 조선 지도를 주고, 이를 받아 본 이여송은 조선에도 인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면서 감복한다. 또, 이여송이 유성룡(柳成龍) 등 재상들에게 트집을 잡아 무릎을 꿇게 하자 이항복 · 이덕형(李德馨) 등이 맞서서 이여송을 굴복시킨다는 내용이다. 둘째, 이여송은 군대를 정비하여 남하할 때 우리 병사들 가운데서 선봉장을 뽑는데, 그때 뽑힌 김응서(金應西) · 강홍립(姜弘立) 등 장수들이 모두 이여송을 감탄시킬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었다는 설화도 있다.
선조의 무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아울러 이여송의 성급한 판단력을 노골적으로 풍자한 설화도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여송이 조선에 구원을 나와서 먼저 선조를 만나 본 다음, 선조가 왕상(王像)을 지니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회군하려 한다. 그러자 이를 안 선조가 독 속에 들어가 통곡하는데, 이여송은 왕의 울음소리를 듣고 용성이라 하며 회군을 중지하였다는 이야기이다.
혈맥을 끊어 개인, 집안, 국가의 운수를 달라지게 한다는 단혈 전설에서 혈을 끊는 인물로 고려시대의 귀화인인 호종단(胡宗旦), 임진왜란을 거치면서는 이여송,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주로 언급된다. 이와 관련하여 이여송이 산천의 혈맥을 끊은 이야기가 상당수 전승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전한다. 이여송이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 귀국할 때 조선에 인물이 많이 날 것을 우려하여 산천의 맥을 끊고는 잔치를 벌인다. 그때 한 노인이 소를 타고 그 잔치 자리를 유유히 지나간다. 이여송이 노하여 잡으러 쫓아가지만, 오히려 노인에게 유인당하여 산중으로 들어갔다가 욕을 당한다. 그는 창피하여 도망하듯 귀국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이여송의 패배와 함께 계략에 말려든 이여송의 무능함까지도 노출된다. 명나라의 뛰어난 장수인 이여송이 이름도 없는 조선의 노인과 대결하여 패퇴한다는 이 이야기는 임진왜란을 통하여 이여송과 명나라 군대에게 손상당한 민족적 자존심을 설화를 통하여 보상받고자 하는 민중의 의지를 잘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