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필사본.
저자가 13세 때인 1582년(선조 15) 12월부터 쓰기 시작하여 1610년(광해군 2)까지 중요한 사실을 엮은 것이다. ‘난중잡록’이라 이름한 것은 임진 · 정유 두 차례의 난의 기록이 주요부문을 차지한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 책에는 저자 자신이 의병장으로 활동한 사실뿐 아니라 당시 나라 전체의 역사적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이 중에 특히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수록한 자료 가운데는 경상순영록(慶尙巡營錄)의 기록이 대부분 실려 있다. 전쟁 등으로 나라가 어수선한 시기에는 사건 기록이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때에는 필요하지 않은 기록은 적지 않아 적은 분량이다.
그 후손에게 보존된 초본에 의하면 제1권은 1582년∼1592년 7월 사이, 제2권은 1592년 8월∼1593년 6월 사이, 제3권은 1593년 7월∼1598년 12월 사이, 제4권은 1599년 1월∼1610년 2월 사이로 나누어 편찬되어 4권 2책으로 편제되었다.
그 뒤 1964년 9월에 『속잡록(續雜錄)』 4권 2책을 추가시켜 전 8권 4책으로 늘렸다. 이것의 책머리에는 기정진(奇正鎭) · 최시옹(崔是翁)과 저자의 서문을, 끝에는 한익철(韓翊哲)의 발문과 저자의 11대 종손인 조태희(趙台熙)의 간행사를 붙여서 후손들이 석판으로 간행, 반포하였다.
이 간행사에 의하면 인조 때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하면서 이 초본이 사료(史料)로 참고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부본을 작성해 정부에 보관하고, 원본은 1657년(효종 8)에 본가에 돌려주었다 한다. 그 뒤 고서간행회(古書刊行會)에서 『대동야승』을 간행할 때 제26권부터 제34권까지 9편으로 나누어 수록한 것은 정부에 보존되었던 부본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그 당시에 표기한 명칭 이외에 『속잡록』을 합하여 ‘산서야사(山西野史)’ 또는 ‘대방일기(帶方日記)’ 등의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임진왜란사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당쟁 · 외교 · 군사 등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1971년 민족문화추진회에 의해 번역, 반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