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안(遂安)이다. 자는 백심(栢心), 호는 용계(龍溪)이다. 안향(安珦)의 문인이다.
1292년(충렬 22) 5월 장군으로 원나라에 가서 탐라(耽羅)의 피화(皮貨)를 바치고 돌아왔다.
1303년 행재소(行在所: 임금이 일시 머무는 곳)인 향수원(香水園)에 이르러 충선왕을 해치려는 음모가 있자 평리(評理) 박경량(朴景亮)·유복화(劉福和) 등과 함께 힘써 이를 막았으며, 1307년(충렬 33) 3월 판예빈사사(判禮賓寺事) 권수밀직부사(權授密直副使)가 되었고, 1308년(충선 복위년) 11월 1303년의 공로로 충선왕이 서용(敍用)하고 이것이 자손에까지 미치게 하였으며, 이듬해 4월 밀직부사가 되었다.
그 뒤 추충보정공신(推忠輔靖功臣)으로 삼중대광 태사 평장사(三重大匡太師平章事)에 이르렀고 수안군(遂安君)에 봉해졌다. 1320년(충숙 7) 흥례군(興禮君) 박경량과 함께 수안군(遂安君)으로서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가 충선왕이 모욕을 당하자 금산사(金山寺)에서 음독자살하였다. 그는 안향이 남긴 뜻을 받들어 각 고을에 미처 세우지 못한 성묘(聖廟)를 세울 것과 오경(五經)과 자사(子史)를 간행하여 여러 고을의 향교에 반포할 것 등을 주청하였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