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송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장군, 삼중대광 태사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백심(栢心)
용계(龍溪)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320년(충숙왕 7)
본관
수안(遂安)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장군|추충보정공신(推忠輔靖功臣)|삼중대광태사평장사(三重大匡太師平章事)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 후기에, 장군, 삼중대광 태사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수안(遂安)이다. 자는 백심(栢心), 호는 용계(龍溪)이다. 안향(安珦)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292년(충렬 22) 5월 장군으로 원나라에 가서 탐라(耽羅)의 피화(皮貨)를 바치고 돌아왔다.

1303년 행재소(行在所: 임금이 일시 머무는 곳)인 향수원(香水園)에 이르러 충선왕을 해치려는 음모가 있자 평리(評理) 박경량(朴景亮)·유복화(劉福和) 등과 함께 힘써 이를 막았으며, 1307년(충렬 33) 3월 판예빈사사(判禮賓寺事) 권수밀직부사(權授密直副使)가 되었고, 1308년(충선 복위년) 11월 1303년의 공로로 충선왕이 서용(敍用)하고 이것이 자손에까지 미치게 하였으며, 이듬해 4월 밀직부사가 되었다.

그 뒤 추충보정공신(推忠輔靖功臣)으로 삼중대광 태사 평장사(三重大匡太師平章事)에 이르렀고 수안군(遂安君)에 봉해졌다. 1320년(충숙 7) 흥례군(興禮君) 박경량과 함께 수안군(遂安君)으로서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가 충선왕이 모욕을 당하자 금산사(金山寺)에서 음독자살하였다. 그는 안향이 남긴 뜻을 받들어 각 고을에 미처 세우지 못한 성묘(聖廟)를 세울 것과 오경(五經)과 자사(子史)를 간행하여 여러 고을의 향교에 반포할 것 등을 주청하였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