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민

  • 예술·체육
  • 인물
  • 현대
해방 이후 조선야구협회 초대 이사장, 아시아야구연맹 한국대표 등을 역임한 체육인.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54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5년
  • 출생지경상북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곽형기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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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조선야구협회 초대 이사장, 아시아야구연맹 한국대표 등을 역임한 체육인.

내용

1905∼1954. 경상북도 출생. 배재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학창시절에 전 조선축구대표의 일원으로 일본·상해 등지에 원정하여 활약하였으며, 그 뒤 야구로 전향하여 1928년 6월 연희전문학교 대 경성의학전문학교의 제2회 정기야구대회에 출전하였다.

이때, 경성운동장이 생긴 뒤 우리나라 최초로 370피트의 홈런을 쳐 일약 타격왕으로 각광을 받았다. 1934년에는 일본 요미우리신문사(讀賣新聞社)의 초청으로 일본에 원정온 미국 프로야구단을 맞아 일본대표팀의 외야수로 뽑혀 활약하였고, 이때부터 3년간 조선대표선수로 일본 도시대항전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1945년 조선체육동지회를 구성하여 조선체육회(지금의 대한체육회)를 재건하는 데 공헌하였으며, 조선야구협회 초대 이사장을 거쳐 1948년 런던올림픽대회에 조사연구원으로, 1950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논프로(Non-Pro.)야구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1954년에는 대한야구협회 부회장, 아시아야구연맹 한국대표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야구의 육성과 해외진출에 힘썼다.

참고문헌

  • - 『체육한국인』(체육부, 1986)

  • - 『한국체육백년사(韓國體育百年史)』(한국체육백년사편찬회, 1981)

  • - 『대한체육회사(大韓體育會史)』(대한체육회,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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