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민 ()

목차
체육
인물
해방 이후 조선야구협회 초대 이사장, 아시아야구연맹 한국대표 등을 역임한 체육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5년
사망 연도
1954년
출생지
경상북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해방 이후 조선야구협회 초대 이사장, 아시아야구연맹 한국대표 등을 역임한 체육인.
내용

1905∼1954. 경상북도 출생. 배재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학창시절에 전 조선축구대표의 일원으로 일본·상해 등지에 원정하여 활약하였으며, 그 뒤 야구로 전향하여 1928년 6월 연희전문학교 대 경성의학전문학교의 제2회 정기야구대회에 출전하였다.

이때, 경성운동장이 생긴 뒤 우리나라 최초로 370피트의 홈런을 쳐 일약 타격왕으로 각광을 받았다. 1934년에는 일본 요미우리신문사(讀賣新聞社)의 초청으로 일본에 원정온 미국 프로야구단을 맞아 일본대표팀의 외야수로 뽑혀 활약하였고, 이때부터 3년간 조선대표선수로 일본 도시대항전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1945년 조선체육동지회를 구성하여 조선체육회(지금의 대한체육회)를 재건하는 데 공헌하였으며, 조선야구협회 초대 이사장을 거쳐 1948년 런던올림픽대회에 조사연구원으로, 1950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논프로(Non-Pro.)야구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1954년에는 대한야구협회 부회장, 아시아야구연맹 한국대표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야구의 육성과 해외진출에 힘썼다.

참고문헌

『체육한국인』(체육부, 1986)
『한국체육백년사(韓國體育百年史)』(한국체육백년사편찬회, 1981)
『대한체육회사(大韓體育會史)』(대한체육회, 1965)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