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대사간, 도승지,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할아버지 이정구와 큰아버지 이명한(李明漢)은 모두 제학 또는 대제학을 역임하였으며, 아버지와 사촌형제들이 모두 문장에 뛰어나 일가가 사림을 이루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74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죽자 자의대비(慈懿大妃) 복상문제를 논할 때 형조판서로서 대공제(大功制: 만9개월)를 주장하였다. 같은 해 현종이 죽자 애책문(哀冊文)을 찬진한 바 있으며, 송시열(宋時烈)이 복상문제로 유배당하자 벼슬에 나가지 않고 관동지방을 유람하였다. 김만중(金萬重)의 장인이며, 저서로는 『동리집(東里集)』과 『동리소설』이 남아 있다.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동리집(東里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