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에 개화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된 기기국의 사사를 지냈고, 1894년 갑오개혁 때에는 공조 참의로 특제(特除)되어 군국기무처 회의원으로 참여하였다.
이 후 승정원승지, 학무아문참의, 학부학무국장, 한성사범학교교장, 외국어학교교장, 법부참서관, 법률기초위원, 법부민사국장, 한성재판소판사, 홍주군수, 중추원의관, 외부교섭국장, 거창군수, 창원감리, 궁내부 장례원전례 등을 역임하였다. 1903년 해서사핵사(海西査覈使)로 임명되어 천주교 관련 충돌사건의 진상을 조사한 「해서사핵사보(海西査覈使報)」를 남겼다. 1906년에 훈4등 태극장(太極章)이 수여되었고, 1910년 정2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