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승지, 예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69년 왕은 홍봉한(洪鳳漢)에게 “이의철이 고서를 많이 읽고 성격 또한 침착하고 깨끗한데 너무 오랫동안 침체시켜두었다.”고 말하면서 발탁의 뜻을 비춘 뒤 대사헌에 임명하였다. 그 해 전라도 광주 지방 유생들이 박세채(朴世采)를 문묘(文廟)에서 출척하려고 상소하자 지배층의 노여움을 사 박해를 받았는데, 그 곳 유생들을 옹호하다가 진도에 유배되었다.
1775년 다시 승지가 되고, 영조가 죽자 행장(行狀)과 시장(諡狀)을 짓기 위하여 찬집청(撰集廳)을 세웠는데, 이때 채제공(蔡濟恭) 등과 같이 당상(堂上)이 되어 이를 주관하였다. 그 뒤 예조판서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을 지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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