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헌, 홍문관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동부승지·대사간·이조참의·원양도관찰사(原襄道觀察使) 등을 역임하고, 1674년에 다시 대사간이 되었다. 그러나 송시열이 유배되면서 같은 서인으로 지탄을 받다가 1679년 양덕(陽德)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에 풀려나와 동부승지에 보직되고, 이어 대사헌·홍문관부제학·경상도관찰사를 거쳐 1682년 형조·이조판서가 되었다.
이 때 서인이 노론·소론으로 분열하고 노론의 영수 송시열이 사직하자 함께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그 뒤 다시 광화부유수·경기도관찰사 등을 거쳐 1688년에 다시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굳이 사양하고 광주부유수가 되어 수어사(守禦使)를 겸하였다.
기사환국 등으로 민암(閔黯)이 정권을 잡고 송시열이 사사(賜死)될 때 이익도 장흥부(長興府)로 귀양가서 배소에서 죽었다. 신의가 있고 높은 지조에 문장과 서예가 뛰어났다. 『수교집록(受敎輯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강한집(江漢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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