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우윤,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75년(숙종 1) 한성부우윤·대사헌 등을 맡아보면서, 숙종 초년 예론(禮論)을 중심으로 한 당시의 국정에 대해 서인(西人)의 입장에서 활발한 언론활동을 하였다. 1679년 도승지 때 송시열(宋時烈)의 예론을 비판하는 곽세건(郭世健)을 공격하였다. 이듬해 대사헌이 되어 윤휴(尹鑴)·허목(許穆)을 면박하는 등의 정치활동을 하다가 강릉부사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경신대출척으로 남인(南人)이 실각하자, 다시 대사헌이 되어 종실 이정(李楨)과 이염(李柟)·권대운(權大運)·민희(閔熙) 등의 남인 세력을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1681년 이조참판·부제학, 1682년 대사성 등을 역임했으나, 1686년 대신들의 공박으로 한때 개성유수로 보외되었다. 1687년 공조판서, 이듬해 우참찬·제학·이조판서를 지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사직하고 고향 양주로 퇴거하였다. 숙종이 『심경석의(心經釋疑)』를 간행하려고 할 때 그것이 이황(李滉)이 직접 쓴 것이 아니고 제자들의 기록이므로, 정확을 기하기 위해 송시열의 교정을 거쳐 간행하도록 허락을 받았다.
이 일에서 보듯이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의 입장을 충실히 지켰다. 문집으로 『매간집』을 남겼다.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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