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위치한다. 묘역은 직계 후손이 없어 방치되었으나, 1967년 5월 성호이익 추모회에 의해 묘역이 정비되었다. 이때 묘비를 포함하여 상석·향로석·망주석 등이 새로이 건립되었다. 1977년 10월 13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익(李瀷, 1681~1763)의 본관은 여주(驪州), 호는 성호(星湖)로,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이다. 1705년(숙종 31년) 증광문과(增光文科)를 보았으나, 낙방하였다. 이듬해 친형이자 스승인 이잠(李潛)이 당시 세자였던 경종을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가 역적으로 몰려 희생되자, 벼슬을 단념하고 안산 첨성촌(지금의 안산시 성포동)에 머물며 일생을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의 묘소는 수원과 인천간 산업 도로가 바라보이는 구릉 위에 위치하고 있다. 묘역의 석물로는 묘비(墓碑)와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망주석(望柱石)이 있다. 봉분의 규모는 600㎝×550㎝×220㎝이다.
묘비는 이익의 사후 204년이 되는 1967년에 건립되었다. 비의 규모는 높이 146㎝, 너비 57㎝, 두께 26㎝이며 묘비의 재질은 오석(烏石)이다. 전면에는 ‘성호선생이공휘익지묘 증정부인고령신씨부좌증정부인사천목씨부우(星湖先生李公諱瀷之墓 贈貞夫人高靈申氏祔左贈貞夫人泗川睦氏祔右)’라 새겨져 있다. 뒷면 묘갈명의 글은 정조대의 명재상 채제공(蔡濟恭)이 지은 것이며, 글씨는 인천 출신인 현대 서예의 대가 검여(劒如) 유희강(柳熙綱)이 쓴 것이다.
묘소는 남향을 하고 있다. 묘소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묘소 오른쪽에는 사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