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통천군수, 충청도관찰사,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치흠(稚欽)
  • 향파(香坡)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668년(현종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통천군수|충청도관찰사|공조참판
  • 출생 연도1609년(광해군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중환 (전 동아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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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한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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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통천군수, 충청도관찰사,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치흠(稚欽), 호는 향파(香坡).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4대손이며, 하원군(河原君) 이정(李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당은군(唐恩君) 이인령(李引岭)이다. 아버지는 밀산군(密山君) 이찬(李澯)이며, 어머니는 이유훈(李有訓)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참봉으로 1651년(효종 2)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통천군수가 되었으나 김세룡(金世龍)의 처의 일로 파직되었고, 1655년에는 금성현(錦城縣)에 있는 경현사(景賢祠)의 일로 참의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1661년(현종 2) 판결사가 되어 가선대부에 올랐다. 1664년 2월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서천(舒川) 천방사(千房寺)의 승려가 일으킨 폭동을 공주영장(公州營將) 양일한(楊逸漢)으로 하여금 자기 소관이 아닌 한산(韓山)·임천(林泉) 등지에 파견하여 승려들을 체포하고 진압한 사실이 뒤에 조정에 보고되지 않은 것이 알려져 선천(宣川)에 유배되었다.

뒤에 풀려나와 공조참판이 되고, 1667년 동지사의 부사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북경에서 죽었다. 글씨에 능하였는데, 특히 송설체(松雪體)로 일가를 이루었다. 글씨로는 「현감죽계조응록묘비문(縣監竹溪趙應祿墓碑文)」 등이 있다.

참고문헌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동국문헌필원편(東國文獻筆苑編)』

  •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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