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성주(成柱)라고도 한다. 본래 상인이었는데 1321년(충숙 8) 정월 호군으로서 원나라에 갔다가 귀국할 때 왕의 입조(入朝)를 명한 조서를 가져왔다. 이는 심양왕 왕고(瀋陽王 王暠)를 받드는 무리들의 참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4월 대호군이 되어 삼사사(三司使) 김순(金恂) 등과 더불어 토번(吐蕃)으로 유배된 충선왕의 심복 권한공(權漢功)·채홍철(蔡洪哲)을 심문하였다. 1327년 11월 심양왕의 일이 수습된 뒤 왕이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었을 때 보필했던 공이 있는 신하들에 대한 포상이 있게 되자 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로서 1등공신에 봉해졌다.
뒤에 밀직부사가 되어 김지경(金之鏡)·고용현(高用賢) 등의 무리와 함께 전선(銓選)을 담당하면서 이미 작성된 비목(批目)을 고치고, 왕의 재가가 있은 뒤에도 마음대로 지우고 썼으므로 주묵(朱墨)을 분간할 수 없어 사람들이 흑책정사(黑冊政事)라고 비웃었다. 아첨을 잘 하여 충혜왕에게서도 신임을 받았다.